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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담은 "영정사진"
관리자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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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켜던 바이올린을 품에 안고 활짝 웃는 할머니. 검지 손가락으로 볼을 누른 채 나름 "귀여운" 표정을 지은 할아버지. 턱받침이나 손깍지를 하고 사색에 잠긴 할머니와 할아버지… 


영정사진 속 주인공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경쾌하고 편안해 보인다. 사진작가 서찬우씨가 찍어 23일 딴지일보 게시판에 공개(http://www.ddanzi.com/free/557237236)한 조금은 색다른 영정사진 84점 속 모습이다. 

서 작가는 지난해 8월부터 연말까지 경기도 분당노인종합복지관에서 복지관을 이용하는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었다. 넥타이를 맨 양복이나 한복 차림으로 웃음기 없이 근엄하게 찍는 보통의 영정사진과는 좀 다르다. 베레모나 스카프를 착용하는 등 피사체가 된 노인들의 옷차림이 한결 가볍다. 표정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밝게 웃고 있다. 사진의 색도 컬러가 아닌 흑백이다. 

서 작가가 색다른 영정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친하게 지내던 선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었을 때 어딘가 경직되고 불편해 보이는 모습으로 나온 영정사진을 3일 동안 지켜보면서 내내 마음에 걸렸던 기억 때문이다. 

그 후로도 장례식에 갈 때마다 "영정사진은 꼭 이렇게 찍어야만 할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손자와 함께 찍은 생전의 자연스러운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는 생각도 났다. 

사진을 업으로 하는 자신이 한번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에 주변 노인복지관을 수소문했다. 요즘은 "장수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생전에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는 일이 많고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노인복지관에서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는 데 착안한 것.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영정사진이 흑백이라니 너무 어두운 것 아니냐"던가 "포즈 등이 튀어서 일반적이지 않다" 등의 이유로 난감해하는 복지관이 많았다고. 그러다가 분당노인종합복지관의 관계자가 서 작가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이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하루에 6명만 사전 신청을 받고 사진 장비와 조명은 물론 사진 찍히는 이의 기분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주는 음악, 향초까지 미리 준비했다. 또 사진 촬영에 앞서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를 먼저 진행했다. ?

"고향은 어디신지, 어떻게 자라오셨는지, 인생에서 좋았던 일, 자랑하고 싶은 일, 자식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 말씀 등등을 여쭤보면 처음엔 어색해하고 긴장하시던 어르신들이 인터뷰 말미에 가선 얼굴과 동작이 아주 편해지십니다. 그때 얻어진 사진을 보시고는 굉장히 만족해하시고요" 
서 작가는 "사진이라는 결과물보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리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자체가 노인분들에게 일종의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며 "중간에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만족과 응원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많아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 작가가 찍은 사진은 복지관 로비에서 "영혼이 가득한 나만의 장수 사진"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로도 소개되고 있다. 사진전이 끝나면 사진은 주인공에게 언젠가 쓸 수 있도록 무료로 보내드린다. 

"오랜 시간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78세 참가자) 

"지난날을 회상할 수 있었고, 지금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삶에 희망이 생겼습니다"(73세) 

"지나온 삶이 무척 아름다웠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었습니다"(63세) 

* 출처 : 연합뉴스 2019.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