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 공고

메모리얼 News

동네 가까이 공원묘지 조성돼야 하는 몇가지 이유
관리자
2019-05-17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33)

 

undefined
 

오래전 뉴욕에 거주하다 귀국한 조카가 앞으로 세종시가 미국의 수도처럼 될 거라며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이사를 했다. 한동안 이웃에 살았는데 섭섭하기도 하지만, 조카의 희망처럼 되기를 빌며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 가끔 세종시를 찾았지만, 건물만 촘촘히 들어섰고 시민들이 거주하기에는 좀 썰렁해 보였다. 그래도 두 모녀는 새로운 사람도 사귀고 그곳에 잘 적응했다. 

  

늘그막에 닥친 암도 극복하고 비교적 건강했던 처형이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얼마 전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장지를 어디로 할지 고민했는데 조카가 가까이에 공원묘지가 있어 그곳으로 정하고 싶단다. 얘기를 들어보니 SK그룹 고 최종현 회장이 희사한 기부금으로 건축한 묘지라 한다. 방문해보니 장례식장과 화장장, 그리고 묘지까지 조성된 아름다운 곳이었다. 조카는 묘지가 집에서 가까워 자주 갈 수 있어 더욱 좋다고 했다. 

  

 

공원묘지 들어선 세종시


몇 년 전 친구가 이민 가서 사는 캐나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도 동네 인근에 이런 공원묘지가 있었다. 넓게 펼쳐진 들판이 멀리서 보면 꼭 골프장 같았다. 묘지를 주로 잔디장으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묘지가 있으면 했는데, 세종시에 유사한 묘지가 들어선 것이다. 

  

지난해 사는 동네에서 좀 떨어진 뒷산에 수목장을 조성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가까운 곳에 그런 시설이 들어서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거리에 큰 현수막이 걸렸다. 우리 지역에 그런 혐오시설이 들어서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반대의 논리는 집값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같은 현상을 두고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십여 년 전에도 그런 이유로 서울 원지동에 화장장을 짓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사실 원지동에 화장시설이 들어서기까지 서울에는 화장장이 없었다. 오래전 홍제동에 있었지만, 도시가 팽창하며 벽제로 이전했다. 인구는 수도권으로 집중하지만 묘지나 화장장은 혐오시설로 몰려 들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2009년 헌법재판소에서 학교 주변에 납골당 건축을 불허하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요즘도 주거지 가까이에 추모시설을 조성하려는 지자체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undefined
은하수공원에 마련된 어머니의 잔디장을 찾은 부부의 모습. 사는 곳 가까이에 부모님을 모시면 자주 찾아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앙포토]

 

자녀를 출가시킨 부모의 바람은 자식을 지척에 두고 자주 보는 것이다.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까이 있으면 하는 것이 어버이의 희망이다. 아마 혼이 있다면 죽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러나 현실에선 그럴 수가 없다. 자식 세대가 집값이 내려간다고 반대하기 때문이다. 

  

한식이나 추석이 되면 우리 사회는 성묘를 가려는 차량으로 교통이 복잡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까이에 묘지가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딱히 명절에 가지 않고 어린 자녀와 함께 주말에 수시로 찾아갈 것이다. 아이들도 자연히 죽음에 대해 배우게 되는 교육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묘지에 대한 발상의 전환 필요


결혼식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장례식에는 꼭 참석하라는 얘기가 있다. 좋은 일에 기쁨을 나누기보다 슬픈 일에 참석하는 것이 당사자와의 관계유지에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자기 죽음을 비로소 생각하고 짧은 동안이나마 자신을 성찰하며 삶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효과가 있다. 동네 가까이에 공원묘지가 있다면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서울 인근이나 수도권에도 세종시와 같은 대규모 공원묘지 조성이 필요하다. 죽은 사람도 산 사람처럼 좋은 공간에 있고 싶다. 문제는 시민들의 인식이다. 사람은 늘 자기는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죽었을 때 어디에 묻히기 원하는가를 상상해보면 답이 쉽게 나올 것 같다. 평소 살던 곳에서 가까이에 있어 자식이 찾아오기 좋은 곳에 있고 싶은가, 아니면 생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으로 가고 싶은가.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백만기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 출처 : 중앙일보 2019.05.10

* 원문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