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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창] 죽음의 격차
관리자
2021-03-12

어떤 행로를 걸어왔던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것만큼은 우리 모두가 똑 같다

다만 그 종착역에 닿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격차가 난다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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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만큼이나, 어떻게 죽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죽음이 마지막 성장의 기회란 말도 있다. 위키백과 

 

죽음이 바로 코앞에 닥쳐오면 모든 것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아무리 돈을 많이 가졌든,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든, 권력이 하늘을 찌른들, 소유한 부동산이 지구를 다 덮은들, 사랑하는 배우자가 옆에 있든 들, 자식들이 모두 출세를 한들, 그것에 관계없이 죽음에 직면하면 모든 것이 허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는 다는 건 확실한 진리인데도 나는 죽지 않는다는 무의식의 신념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다고 하이데거(Heidegger)는 진작 말했다. 인간의 오만과 망각이 그 단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지혜롭게 살아왔던 사람은 그제야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런 생각들은 거의 죽음에 내몰리기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한 생경스런 것이다. 이때 나는 누구인지, 죽음 뒤에도 내가 존재하는 것인지, 천당이나 지옥이 정말 있는 것인지, 내가 믿는 신은 정말 존재하고 내가 죽은 뒤에 나를 거두어 줄는지와 같은 매우 종교적 질문들이 나를 에워싸고 말 것이다.

 

이런 것들에 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죽음을 준비하면 좋으련만 평소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는 건강을 찾을 수 없는 비가역적인 상태에 들어가서도 죽음을 차분하게 준비하기보다는 생명을 얼마간이라도 연장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웰빙(well-being)에만 천착한 나머지 죽음에 관해서는 외면 내지는 터부시한 것이 그 빌미가 된 것일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죽음을 효과적으로 준비하지 못하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끝까지 미루다가 갑자기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는 것이다. 

 

적절한 준비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됨에 따라 임종자 본인이나 그의 가족들은 불필요한 고통과 재정적 낭비를 겪게 되고, 임종자는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6년 한국에서 사망한 28만 명 중 21만 명인 75%가 병원에서 사망했고, 말기 암환자는 90%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꼽은 채 임종을 맞이했다.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런 마지막 순간까지 산소공급을 환자에게 계속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자식들의 마지막 효도의 일환일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만큼이나, 어떻게 죽는가가 중요하다. 죽음은 마지막 성장의 기회란 말도 있다. 이것이 죽음학(Thanatology)이란 학문을 존재하게 하는 당위성이 아닐는지.

 

죽음 준비의 첫 단계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남은 생을 정리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컨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생을 돌아보고 존엄하게 이승을 마칠 수 있게 준비하라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마치 영원히 살 것으로 착각하는 것으로, 아직도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로지 목숨의 부지에만 몰두하는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단계는 말기질환을 선고받은 다음부터라고 한다. 말기질환이란 사고나 병으로 다시는 건강을 회복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 이후는 우리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이때,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유언장>과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유언장은 사실 이러한 상황에 닥쳐서 쓰는 것보다 건강할 때 평상의 감각으로 쓰는 것이 더 좋다. 언제라도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찍 써두는 게 본인에게 유리하다. 유언장은 자기 자신 이라기보다도 가족들을 위해 쓰여 지며, 버킷 리스트와는 전혀 다르다. 버킷 리스트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만족이니 이기적 측면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유언장>에 들어가는 내용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선 임종과 장례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는 희망하는 임종장소나 자신이 원하는 장례방식을 밝혀놓는 게 좋다. 이를테면 화장이나 매장, 자연장 등에서 어떤 방식을 원하는지에 대해 적고 희망하는 장례방식이 있으면 적는다. 아울러 제사나 추모제에 관해서도 본인의 의향을 피력한다. 마지막으로는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적는데 이때에는 가족 모두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고 개별적으로 당부의 말을 남길 수도 있다. "은행통장은 가족에게 물질을 남기지만 유언장은 가족에게 마음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 유언장은 남겨진 가족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사전의료의향서>의 작성이다. 이 문서에는 우리가 의식불명 상태가 됐을 경우 어떤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가를 미리 밝혀놓는 것이다. 만일 이 문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가 시행되어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아름답지 못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다. 예컨대 값비싼 의료 서비스로 자식들에게 엄청난 경제적인 부담을 안겨 줄 수 있다. 주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과 같은 연명치료는 거절하고 진통제 처방만을 허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죽음학회는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존엄하게 맞이해야 할 삶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길, 이 길을 스스로 준비하는 것은 남겨진 자식들뿐 아니라, 본인의 생을 값지게 보내기 위한 이정표와 같다.

 

KSS 海運 창업자 박종규 회장(1935-현재)은 다음과 같은 유언장을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죽음의 격차>를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하다.

 

“사랑하는 처와 자식들에게, 나는 내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수지맞는 인생을 산 것이다. 그런데 내가 행복하게 산 것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컷기 때문이다. 많은 불행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내 몸 하나 바치는 것은 아깝지 않다. 내 모든 장기와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하기 바란다. 남은 유골은 내가 좋아하는 바다에 뿌려주기 바란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 한 나로서는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큰 기쁨이다. 또한 일반적인 제사는 지내지 말라. 어느 집이나 며느리 되는 사람의 노고가 너무 크다. 기일(忌日) 아침에 각자의 집에서 내 사진과 꽃 한 송이 꽂아놓고 묵념추도로 대신하기 바란다. 그리고 저녁에 음식점에 모여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는 기회로 삼아라. 식비는 돌아가면서 내도록 하여라. 그리고 이러한 추도도 너희들 일대(一代)로 끝내기 바란다. 1998. 8. 25. 아버지로부터 ”

 

* 출처 : 시니어매일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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