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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란서생] 진지하고 무거워야 추모곡인 건 아니다
관리자
202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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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포에버"가 수록된 오아시스 1집 앨범.

 

“노래 한 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음악은 소속 단체가 없어요. 사람들에게나 소속 단체가 있죠. 좋아요. 그렇다면 한 곡의 노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가끔 보석 같은 다큐멘터리를 만난다. 그중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디스 이즈 팝〉을 빼놓을 수 없다. 총 8부작으로 이뤄진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아무래도 ‘오토튠’에 대한 에피소드다. 오토튠은 음정을 보정해주는 기계장치다. 따라서 당신이 천하에 몹쓸 음치라도 오토튠만 있으면 제법 근사한 노래로 변환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오토튠은 첨단기술인 동시에 음악의 질적 하락을 가져온 주범 취급을 받았다. 음악을 지루하고 단조롭게 만들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뭐, 둘 중 어떤 의견을 택하느냐는 철저히 관점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다. 어쨌든 시간은 흘렀고, 최신이었던 오토튠도 이제는 구식 취급을 받고 있다. 일찍이 셰어(Cher)가 자신의 곡 ‘빌리브(Believe)’에서 시도해 ‘셰어 이펙트’라고도 불렸던 오토튠은 그렇게 잠깐이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 에피소드는 오토튠의 화양연화를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추적하고 되짚는다.

 

만약 당신이 1990년대 모던 록의 팬이라면 브릿팝 전쟁에 관한 편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정말이다. 나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오아시스와 블러에 대해 아는 게 많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아니다. 내가 틀렸다. 나도 몰랐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특히 블러가 처음 미국 투어를 갔을 때 겪었던 일화는 ‘완전 터진다’. 모던 록 팬들이여. 지금 당장 하던 일 멈추고 이 에피소드를 향해 진군하기 바란다.

 

이 밖에 ‘페스티벌의 비상’ 편에서는 페스티벌의 의미를 둘러보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공연에 가고 싶은 욕구를 한껏 불러일으킨다. ‘브릴 빌딩’ 편에서는 미국 대중음악의 형식을 확립한 브릴 빌딩이 대체 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영순위를 꼽으라면 이 에피소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 곡의 노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최근 음악을 놓고 다시 논쟁이 불붙었다. 추모하는 분위기 속에 수많은 공연이 강제적 혹은 자발적으로 연기·취소되었다. 기실 자발적이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어딜 감히 공연을 해?”라는 눈총이 두려워 선택한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처럼 고백하고는 한다. “음악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어요”라고 말했던 경험, 당신에게도 있을 것이다. 해외 사례가 꼭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쪽에서는 국가적 비극이 발생했을 때 (대규모의) 공연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고 서로를 위로한다. 나는 아직도 영국 맨체스터 폭탄테러 희생자 추모 공연에서 울려 퍼진 ‘리브 포에버(Live Forever)’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오아시스가 만든 이 곡, 진지하고 무거운 노래가 절대 아니다. 도리어 그 반대에 가깝다. 아마 한국에서 추모곡으로 불렀다가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추모가 꼭 장송곡풍의 음악으로만 행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데리다가 쓴 것처럼, 추모는 떠나간 자에 대한 애도인 동시에 그들을 통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행위다. ‘리브 포에버’의 가사를 보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왜 저들이 이 노래를 추모곡으로 합창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 언제쯤 우리는 대중음악을 ‘딴따라질’로 폄하하는 시선을 폐기할 수 있을까. 아, 있기는 있다. 오직 대중음악이 거대한 상업적 성과를 거뒀을 때만 그렇다. 이것만은 일관성 측면에서 대한민국이 전 세계 톱이다.

 

* 출처 : 시사인 20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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