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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Record] 김우중 회장
관리자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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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우 중

 

출생 1936년 12월 19일

사망 2019년 12월  9일

 

대한민국의 1세대 기업인으로,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한 뒤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올랐으며, 이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대우는 1998년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1999년 해체됐고, 이후 해외로 도피한 김 회장은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 추징금 17조 9000억 원을 선고 받았다. 이후 2008년 사면을 받은 뒤 베트남 등지에서 거주하다, 2018년 건강 악화로 귀국해 국내에서 치료를 받다 2019년 12월 9일 타계했다.

 

1936년 12월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전쟁으로 부친이 납북된 이후 서울로 올라와 경기중과 경기고를 졸업했다. 이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3~1966년까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일하다 만 30세인 1967년에 자본금 500만 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실업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내쇼날의류 등 섬유회사, 대우증권의 전신인 동양증권 등을 인수하고 대우건설·대우중공업 등을 설립하며 금융·전자·중공업 등의 분야로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45세 때인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올랐고, 이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 확장을 진행했다. 특히 1990년대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면서 글로벌 경영을 본격화했다. 이에 자본금 500만 원으로 시작한 대우실업은 출범 30여 년 만인 1998년에는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을 거느린 재계 서열 2위로 성장했다. 특히 해체 직전인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당시 한국 총 수출액(1323억 달러)의 14%를 차지하기도 했다. 여기에 1989년 내놓은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6개월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며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그룹은 1998년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린 데다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지면서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이에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도 발표했지만,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다. 그리고 그해 10월 중국으로 도피한 김 전 회장은 21조 원대 분식회계와 9조 9800억 원대 사기대출 혐의가 드러나면서 귀국하지 못하고 5년 8개월간의 해외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2005년 귀국했다. 그리고 2006년 징역 8년6월과 벌금 1000 만원,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을 선고받아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하지만 17조 원이 넘는 추징금은 아직 그대로 남은 상태다.

 

김 전 회장은 그룹 해체 이후 베트남 등에서 머물면서 동남아에서 인재양성 사업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GYBM. 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프로그램에 주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2017년 3월 서울에서 열린 "대우창업 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2018년 말 건강 악화로 귀국했으며, 2019년 12월 9일 8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