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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LG 창업회장 50주기
관리자
201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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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연암 구인회 LG그룹 창립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31일로 50주년을 맞는다. LG그룹은 구 회장의 50주기 관련 행사를 진행하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히 추모할 것으로 보인다.

 

31일 LG그룹 관계자는 "연암 50주기에는 별도 행사를 치르지 않고 조용히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유교적 전통이 강한 LG그룹 총수 일가의 특성상 가족끼리 모여 제사를 지낼 것으로 전망된다.

 

구 선대회장은 1907년 경남 진양군(현재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나, 1931년 진주에서 구인회포목상점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구 회장은 현재 LG그룹의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부문의 기틀을 마련해 회사의 근간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7년 부산으로 건너가 LG그룹의 모태가 되는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해, 럭키크림을 생산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럭키크림은 "동동구리무"라는 애칭을 얻어 불티난 듯 판매됐고, 구 회장은 칫솔, 세숫대야, 식기 등으로 생산 품목을 확대하며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1954년에는 부산진구 연지동에 공장을 오픈, 비닐원단 및 플라스틱제품 제조시설을 갖췄으며 이듬해인 1955년에는 럭키표 치약을 생산, 국민적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전자기업으로의 발돋움도 고 구인회 회장의 추진력이 일궈낸 작품이다.

 

그는 1958년 LG전자의 모태가 되는 금성사를 설립, 국산 라디오 생산에 박차를 가했고 1959년 제 1호 국산 라디오인 "A-501"을 생산, 금성사는 이후 1966년 국내에서 최초로 흑백TV 생산에 성공하기도 했다.

 

에너지 사업 개척에도 적극적이였다. 그는 미국 칼텍스와 5대 5 비율로 합작해 만든 호남정유를 설립, 우리나라 산업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어 1959년에는 한국 최초의 전자공업회사인 금성사를 세워 국내에서 처음으로 라디오를 생산하는 등 LG그룹의 기틀을 잡았다.

 

구 회장은 1969년 12월31일에 갑작스러운 뇌종양으로 향년 63세로 타계했다. 구 회장에 뒤를 이어 그의 장남인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기업 총수직을 이어받았다. 

 

* 출처 : 뉴시스 201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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