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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Record]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 (Walton H. Walker: 1889~1950)
관리자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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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튼 해리스 워커(Walton H. Walker: 1889~1950) 대장.

 

오늘날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6·25 전쟁의 은인(恩人)은  <맥아더 장군>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용맹한 장군이 없었다면 6·25의 흐름을 반전(反轉)시킨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월튼 해리스 워커(Walton H. Walker: 1889~1950) 대장이다. 워커 장군은 초대 미8군 사령관으로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남진하는 북한군을 낙동강 방어라인(워커라인)을 구축하여 막아낸 인물이다. 

 

포항·영천·대구·창녕·마산·통영을 잇는 낙동강 전선이 뚫렸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신생 독립국은 지도 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전선에서 몸을 사리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던 워커 장군은 6·25 전쟁이 한참이던 1950년 12월 23일 전사(戰死)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중공군과 맞서 방어전을 펼치던 미 24사단과 영연방 27여단을 방문하기 위해 의정부 북방으로 가다가 반대편에서 남하하던 한국군 트럭과 부딪혀 현장에서 사망한 것이다.

 

미 제24사단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아들 샘 워커 대위에게 미국 정부가 수여한 은성무공훈장을 직접 가슴에 직접 달아 줄 계획이었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후 워커 장군은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빠르게 잊혀졌다.

 

워커 장군은 1889년 텍사스주 벨톤(Belton) 시에서 출생했다. 1908년 미 육군 사관학교에 입교한 그는 1912년 졸업 후 소위에 임관했고, 1916년 중위로 세계 제1차대전에 참전했다. 1918년에는 미 5사단 기관총대대 중대장으로 프랑스의 뫼즈-아르곤 전투에 참전, 뛰어난 전공을 세워 소령으로 지급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워커 장군은 전차전의 귀재인 조지 패튼(George S. Patton) 장군이 지휘하는 미3군 예하의 20군단을 맡아 유럽전선에서 맹활약했다. 워커 장군이 지휘한 20군단은 <유령의 군단>이란 별명을 얻었다. 전후 워커 장군은 미 본토 5군 사령관을 거쳐 1948년 9월 일본 점령 임무를 맡은 미8군 사령관에 임명됐다.

 

6ㆍ25 전쟁이 발발하자 워커 장군은 한국군의 작전권까지 인계받아 모든 지상군을 통합 지휘하는 주한 유엔군사령관이 되어 전장을 총지휘했다. 미8군은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1950년 7월 7일 대구로 사령부를 옮겼다. 당시 미군은 워낙 급하게 참전했기 때문에 북한군을 반격할만한 만한 충분한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워커 중장은 8월 말 이루어질 연합군의 대대적인 반격 준비를 위해 북한군을 최대한 지연시켜야만 했지만, 전황은 여의치 않았다. 8월이 되자 아군은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왔다. 하지만 워커 장군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동강에서 전선을 고착화하는 데 성공하였고, 반격할 준비를 계속해 나갔다.

 

북한군은 낙동강 방어선만 뚫으면 100km도 되지 않는 부산까지는 한달음에 진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필사적인 공세를 퍼부었다. 북한군의 낙동강 전선 돌파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다부동, 영천, 포항, 마산 등지에서는 연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워커 장군은 낙동강 방어선의 사수를 위해 예하 장병에게 다음과 같은 훈시를 했다.

 

“우리에게 제2의 뒹케르크(1940년 5월 프랑스 북부 뒹케르크 항구에서 독일군에 몰린 영국-프랑스 연합군 30만명을 영국으로 철수시킨 작전) 철수는 없다. 그러한 탈출구가 있다고 기대하지도 말라! 부산으로 밀리면 대살육이 일어난다. 오직 사수하느냐 죽느냐(Stand or Die)의 선택밖에 없다.”

 

워커 장군은 자신의 말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의 육군본부가 부산으로 내려간 상황에서도 미8군사령부를 대구에서 후퇴시키지 않았다

 

워커 장군은 호위도 없이 전선을 돌아다녔다. 지프 뒤에는 30구경 기관총을 장착하여 적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손수 기관총으로 응사할 태세를 갖추었다. 지프차 밑바닥은 강판으로 보강하고, 바닥 위에는 흙 마대를 깔아 지뢰 폭발에 대비했다. 백선엽 장군은 이런 워커 장군을 통해 “현장을 보러 다니는 습관”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미 육군은 지금도 워커 장군을 추앙하는 의미에서 수색용 경전차인 M41형 전차에 <불독 워커>라는 애칭을 붙였다.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워커 장군은 대장으로 추서됐다. 한국전쟁에 대위로 참전했던 샘 워커 장군은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장으로 진급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대장으로 진급한 것은 미군 역사상 최초였다.

 

* 출처 : pu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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