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신분당선 계단서 껌 팔던 일명 강남역 껌 할머니 94세로 별세
자식들 있지만 짐 되기 싫어 아픈 몸 이끌고 껌 팔아
시민들 "할머니께 위로 많이 받았는데…고맙고 미안하다" 추모
유족 "시민님들 할머님에 대한 따뜻한 마음 고맙고 감사합니다"
일명 강남역 껌 할머니가 별세했다. 향년 94세. 정확한 별세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소 일주일 전에 돌아가신 것으로 전해졌다. 이 할머니는 강남역과 신분당선 지하철 역사 한 계단에 앉아 오랜 기간 껌을 팔았다.
할머니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SNS)은 물론 할머니가 앉아 껌을 팔던 자리에도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20일 오후 할머니가 자리했던 곳에는 꽃과 그를 기리는 추모 편지 등이 놓여있었다.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할머니가 팔던 껌을 종종 사드리곤 했는데, 너무 안됐다.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다"며 애석한 마음을 보였다. 인근 상인들도 "할머니를 오래 봤는데, 돌아가셨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라고 애도했다.
할머니는 생전 고급 자가용을 타고 다니거나, 조직폭력배의 소행으로 껌을 팔고 있다는 등 각종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 방송사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4남매의 어머니로 자식들에게 손 벌리는 게 싫어 차가운 강남역 계단에 앉아 껌을 팔았다.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껌을 팔아주는 등 할머니의 생계를 도왔다. 할머니는 생전 방송 인터뷰를 통해 특히 장남을 유독 많이 언급했다. 방송에서 큰아들은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을 자주 찾고 있다"며 약도 주기적으로 늘 챙겨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 사회복지사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못 해준 것이 너무 많아 일종의 속죄하는 마음도 있고 자식을 위해 지속해서 돈을 버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네 주민들에 따르면 할머니는 오전 9시께 집을 나와 오후 9시30분께 자리를 정리, 꼬박 12시간 정도 차가운 역사 계단에 앉아 껌을 팔았다. 주변 노숙인들의 행패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자식들을 위해 껌을 판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20일) 추모 공간에 놓인 한 20대 여성이 두고 간 추모 편지에는 할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이 여성은 "고등학교 때부터 할머니를 뵈었는데 벌써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네요"라면서 "아직도 껌을 살 때면 매번 고~맙습니다 하시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라고 할머니를 추억했다.
특히 "생전에 따뜻한 말 더 못 건네드리고 껌 더 많이 사 먹지 못한 게 너무나도 후회스럽습니다"라며 "알게 모르게 강남역을 오가면서 할머니께 위로를 많이 많은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이어 "나중에 다시 만난다면 껌 사 먹던 아가씨라고 기억해주시고 꼭 한번만 안아주세요. 사랑해요. 할머니"라고 추모했다.
할머니를 위한 추모는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돌아가셨다는 소식 들었네요 출퇴근할 때마다 맨날 보던 분이고... 현금 있을 때 껌사고 날 추워서 핫팩이랑 뜨끈한 국물 갔다 드렸었는데... 인사라도 드릴걸.. 얼마 전에도 밝게 웃으시던 분..... 엊그제 안보여서 어디 편찮으신가? 에이 설마 돌아가신 거 아니겠지, 이러고 있었는데 죄송해요. 잘 쉬세요"라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오늘 강남역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추모하고 계시는 거 보고 소식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지나칠 때마다 한번 꼭 사드려야지 마음만 먹었네요. 죄송합니다. 껌 한번 사드리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계속 미뤄왔는지…."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다른 누리꾼은 "오늘 강남역 다녀왔어요…. 누군가 꽃과 음료수를 두고 가셨더라고요 할머니 이제는 편하게 쉬세요…. 항상 오가며 대화도 많이 나누고 그때마다 살갑게 반겨주셨는데 너무 슬프네요…."라고 말했다.
한편 할머니를 추모하는 시민들을 위해 유족은 생전 할머니가 계시던 계단에 감사의 글을 남겼다.
유족은 "시민님들 할머님에 대한 따뜻한 마음 고맙고 감사합니다. 할머님께서는 이 세상 고생 그만하시고 하나님의 품에 안겨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기도 많이 해주세요. 감사합니다"라며 "이제는 기도와 마음으로만 애도해주세요.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시민들의 추모 마음에 한 사회복지사 관계자는 "할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본인은 물론 누구에게나 있는 할머니에 대한 공감대 형성으로 잘 도와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오랫동안 차가운 지하철 역사 계단에 앉아 찬 바람을 맞아가며 고생을 해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할머니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복지는 물론 관련 사각지대 해소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출처 : 아시아경제 2020.12.21
* 원문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