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기 추모콘서트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고 임세원 교수 가족의 얼굴은 1년 전보다 훨씬 밝아보였다. 아내 신은희 교수는 임 교수의 얼굴이 박힌 포스터를 보며 “참~ 잘생겼죠?”라고 말을 건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추모콘서트의 인사말을 한 아들들의 목소리 역시 힘이 실렸다. 1년의 세월은 가족의 고통을 잊게 해줄 만한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가족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밝아질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 9월 임세원 교수가 의사자 지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마음 아픈 사람들의 좋은 의사로 친구로, 자살예방을 위한 교육개발자로 헌신하던 임세원 교수는 2018년 12월 31일, 자신의 환자에게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충분히 자신의 몸을 피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는 동료를 먼저 피신시켰고, 이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여러 차례 거부당했지만, 가족과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1년 전, 처음 의사자 지정이 거부당했을 때, 조울증 환자와 그 가족들이 모인 코리안매니아에서 임 교수에게 의사자 패를 주었고, 1주기 추모콘서트에서는 콘서트에 모인 사람들의 이름으로 패를 드렸다. 그리고 마침내 2주기 추모콘서트에는 임세원 석자 이름 앞에 <의·사·자> 석자가 붙었다.
콘서트 녹화일인 지난 12월 8일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첫날이었다. YTN미디어홀을 꽉 채워 진행한 1주기 콘서트와는 다르게 유족만을 모시고 무관객으로 진행했다. 사실 이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한 해를 보낸 국민에게 임세원 교수의 삶과 죽음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콘서트를 진행했다. 2주기 추모콘서트 포스터에 백합을 실었다. 백합은 부활을 상징한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을 고통받고 있는 국민을 위해 어떤 일을 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콘서트에 실었다.
지난 12월 8일 녹화가 진행된 고 임세원 교수의 2주기 추모콘서트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에서 가수 최백호가 추모 노래를 부르고 있다.
1주기 콘서트에는 가수 이은미씨와 박기영씨가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자신의 우울증 경험을 담담하게 나눴다. 이은미씨는 우울증의 끝에 그의 최고의 히트곡 <애인 있어요>를 만났고, 제2의 가수의 시간을 열게 됐다. 박기영씨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20대를 보냈던 때를 회상하며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며 그냥 살아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주기 콘서트에는 가수 최백호씨와 알리씨가 고백과 희망 이야기를 이어갔다. 칠순을 앞둔 백발의 최백호씨는 “죽고 싶은 순간마다 ”이 또한 지나간다“라는 생각으로 버텨나갔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 임 교수님처럼,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인 가족처럼 지금 우리의 고통을 이겨냅시다”라고 말했다. 알리씨는 올 한 해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며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다 털어놔 봤더니 거짓말처럼 괜찮아지더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이 경험을 가지고 자신은 노래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고 임세원 교수 2주기 콘서트에서 추모 공연을 하고 있다.(사진 왼쪽) 백종우 경희대 교수가 고 임세원 교수가 개발한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설명하고 있다.
그가 지금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괜찮아 잘될 거야”라는 가사의 노래 <슈퍼스타>의 주인공 이한철씨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국민을 격려했다. 그는 동료 가수들과 <슈퍼스타> 노래의 소절을 나눠 각자 자신의 집에서 녹음해 함께 부르는 방구석 챌린지를 실시했다. 코로나19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을 탓하지만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그의 뜻이었다. 콘서트의 마지막을 이 노래로 장식했다. “괜찮아 잘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이 가사를 떼창으로 부를 관객도 없었고, 창궐하는 코로나19 속에 아직까지 눈부신 미래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한철씨는 목을 높여 밝은 얼굴로 불렀다. 그리고 그 노래를 함께 조용히 유족들은 따라 불렀다.
임세원 교수가 살아 있다면,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인사를 건넬까.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콘서트 마지막에 건넸다.
“지난해 1주기 콘서트 때 제가 이런 말을 했죠. 임세원 교수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바로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를 보내는 우리에게 임 교수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잘될 거야. 이 또한 지나갈 거야“라고 되뇌며 잘 견뎌내는 것, 버텨내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 우리 함께 살아냅시다.”
“살자. 살아내자. 그래서 내년 임세원 교수 3주기 추모콘서트에는 긴 겨울을 끝낸 봄의 이야기를 꼭 하자.” 그렇게 다짐한다.
고 임세원 교수의 2주기 추모콘서트는 12월 25일 YTN라이프(오후10시) 및 YTN라디오(오후 1시 10분)에서 방송될 예정이다.
고 임세원 교수는 20년간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치료해온 정신과 의사다. 한국자살예방협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했는데, 사망 당일 이 교육이 본인이 일하는 성균관 의대생들에게 필수과정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본인이 극심한 허리통증으로 우울증을 겪은 뒤 솔직한 경험을 담은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펴냈다.
* 경향신문 202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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