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다고 고마웠다고 전해달라”
지난 금요일(2월 18일) 평창동에서 호출이 왔다. 이어령 선생이 급히 찾으신다는 전갈이었다. 이즈음 선생은 잠옷을 입고 서재와 거실에 누워 내방객을 맞이하곤 했다. 아무런 의료적 장치에 기대지 않고 때가 되면 링겔로 최소의 영양만 취했으나 골상의 윤곽이 다 드러난 채로도, 해야할 일과 말을 명료하게 지휘해가셨다.
“이보게. 좀비 영화가 유행하니, 이젠 내가 좀비야. 숨만 붙어 있잖아(웃음).”
농담할 때마다 입 주위 근육이 당겨져 앙상한 이마 뼈가 도드라졌다. 보라색 담요를 덮고 비닐 강갑을 낀 스승과 숨이 붙은 채로 나는 함께 웃었다. 마른 해골조차 “있으면” 그건 죽음이 아니라고, 진짜 죽음은 슬픔 조차 “사라진 상태”라던 말씀을 상기하며.
그는 의사가 사망 선고를 내리기 전, 당신 스스로 사회적 사망 선고를 내리길 원하셨다.
“더이상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네. 자네가 글로 내 사회적 죽음을 공표해 주게.”
당신의 명명으로 생사의 선을 넘고자하는 선생의 기세는 완강했으나, 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숨을 죽이고 간곡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나즈막히 말을 이어갔다.
“깜깜한 밤중이었네. 내가 가장 외롭고 괴로운 순간이지.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어. 누군가 하고 봤더니 노래하는 장사익이야. 그이가 집에서 쓰던 기계를 다 챙겨와서 내 앞에서 노래를 불러줬다네. 1인 콘서트를 한 거야.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한 곡이 끝나고 또 한 곡...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너무나 애절했어. 너무나 아름다웠지. (침묵)이런 아름다운 세상이 계속 됐으면 좋겠어.
글로 써주게. 사람들에게, 너무 아름다웠다고, 정말 고마웠다고.”
거실 깊숙히 2월의 햇살이 비춰들었다.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 입술로도 그는 이야기꾼이 산신령을 만나러 가던 이야기를 이어갔고, 천천히 넘어가는 태양의 온기를 즐겼다. 지난 번 만남에서 김용호 작가가 선물한 머리에 전등을 단 “모던보이”가 당신을 닮았다고 하자, 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불을 켜라고 기쁘게 다그쳤다.
몸의 형상인 흰 도자기 위, 동그란 머리 전구에 불빛이 들어오자, 그가 흡족하게 말했다.
“저게 나야!”
살아온 대로 죽는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그는 그가 말하고 쓴 대로 마지막 시간을 쓰고 완벽하게 연출해 갔다. 항암 치료를 거부했고, 치료약을 일체 먹지 않았다.
그의 곁에서 선생의 손발이 되어 밀도 높은 밤낮을 함께 했던 김연 실장과 박용국 비서는 말했다.
“선생님을 정말 존경해요.”
뭐랄까. 그들이 말하는 존경이라는 단어는 일반인들이 멀리서 바치는 “존경의 찬사”와는 사뭇 결이 달랐다. 선생은 병원 중환자실에 갇히지 않고,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집에서 해를 쬐며 삶 쪽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것은 미련이 아니라 즐거운 책무였다.
임종을 앞 둔 89세 노인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다 챙겨서 만나고 그들을 축복했는지, SNS에 올라온 간증을 보고 나는 인중에 땀이 고였다. 사지 팔팔하게 움직이는 나조차도 감당 못할 스케줄이었다.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은 것은 책이었다. 쓸 수 없을 때 쓴다던 세 줄 일기 “눈물 한방울”을 비롯해 딸 이민아 목사에게 쓴 시와 여러 편을 모은 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20편으로 기획된 “이어령 대화록”과 이미 앞서 대장정을 시작한 “한국인 이야기” 등이 차례로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을 쓰기 위해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여러차례 내게 농담처럼 말했었다.
“3월이면 나는 없을 거야.”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나는 봄을 기다렸지만, 동시에 스승 없는 세상에서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워 봄이 더디 오길 바랬다.
오는 3월 15일은 따님인 고 이민아 목사의 1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임종 하루 전, 지난주 금요일(2월 25일). 선생은 출판사 열림원 김현정 주간에게 전화를 걸어 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의 서문을 불러주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는 받아 적지 못했다. 헌팅턴 비치는 살아 생전 이민아 목사가 살던 미국의 바닷가였다.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네가 간 길을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다. 2022년 3월 이어령.“
3월을 며칠 앞두고, 그렇게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3월을 명명한 후, 선생은 떠났다.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야. 세계의 끝, 어스름 황혼이 아니지.” “눈부시게 환한 대낮이지요.”
“맞아.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장미밭 한복판에 죽음이 있어. 세계의 한복판에. 생의 화려한 한가운데. 고향이지.” “그 말이 왜 이토록 아름다울까요?”
“어둠이 아니라 빛이라서. 밤이 아니라 대낮이라서 그렇지.”-’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2월 26일 정오 경. 환한 대낮에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선생은 죽음과 따뜻하게 포옹하며 자신의 말을 완성했다.
소박하고 경이로운 한국말로 세계의 혁신을 명명했던 언어의 거인. 디지로그와 생명자본, 갓길과 굴렁쇠의 창조자. 참가자이자 감독의 역할로 생의 한가운데서 죽음의 전 과정을 아름다운 선물로 생중계했던 우리의 영원한 문화부장관 앞에 end 마크 대신 꽃 한 송이를 올린다.
* 출처 : 조선비즈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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