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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 영화인 강수연 씨 별세…향년 55세
관리자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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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때부터 아역 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대한민국 최초의 월드스타.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타고난 연기 재능, 여기에 완벽주의에 가까운 프로근성까지. 강수연은 배우의 3요소를 모두 갖춘 완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 갓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 베니스 국제 영화제(《씨받이》)와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아제 아제 바라아제》)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부장제에 희생된 아낙부터 독립적인 현대 여성까지 강수연은 한국 여성상의 극단적 스펙트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베니스 국제 영화제 등에서 여우주연상 총 10관왕을 달성했다. 드라마 <여인천하>의 정난정 역으로도 유명하다.

 

1966년 8월 18일에 출생, 길거리 캐스팅으로 1969년부터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의 언론통폐합 이후로는 KBS로 활동 무대를 옮겨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가 큰 인기를 얻으며 당시 손창민과 더불어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85년 영화 <고래사냥 2>로 성인 배우로서 첫 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부터 강수연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1987년에 개봉된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는 그 해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며 대흥행,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는 관객 수 124,259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에 대종상에서 여자 인기상과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기세를 이어받아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 <씨받이>가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해외에서 뜻밖의 주목을 받아 베니스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동아시아 배우 중 최초. 이때부터 강수연에게 월드 스타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 중략 - 

 

2022년 들어서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면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5월 5일 오전부터 두통을 호소하였으며 두통을 느낀 강수연은 119에 신고해 구급대원들이 출동하기도 했으나 당시에는 병원 후송을 원치 않아 철수했다고 한다. 17시 48분에 강수연의 가족들이 넣은 신고를 받고 119가 출동하였으나 이미 심정지를 일으킨 상태로 발견되었다.

 

강수연은 즉시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면서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뇌출혈 진단을 받았고 혼수상태에서 병원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5월 6일에는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상태라고 알려졌는데, 수술을 통한 치료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병원에서 수술을 해도 경과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가족들도 수술을 포기한 것이 이유로 전해졌다. 

 

일련의 소식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 임권택 감독, 류승완 감독, 배우 설경구 등 영화계 인사들이 그의 쾌차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줄지어 발표하며 희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틀도 채 지나지 않은 5월 7일 15시, 강수연은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향년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출처 : 나무위키 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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