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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고(故)조오련 선수 14주기
관리운영자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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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두 아들과 함께 울릉도~독도를 수영으로 횡단한
고(故​) 조오련 선수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 언급됐듯, 전 수영선수인 고(故) 조오련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있어서 바다거북이 만큼 빠른 존재였다.

 

수영복이 없어서 사각팬티를 입고 대회에 나갔던 소년은, 압도적인 수영 실력으로 어느 순간 주목받기 시작해 50여개의 한국 신기록을 경신하는 등 아시아의 물개로 우뚝 섰다.

 

무엇보다 그는 은퇴 후에도 대한해협 횡단, 도버해협 횡단, 울릉도~독도 횡단 등 나이를 무색게 하는 남다른 도전 정신으로 귀감이 됐다. 그러나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을 기념해 재도전을 준비하던 2009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숨지고 말았다. 향년 57세.

 

195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조오련은 어린 시절 고향 실개천과 바다에서 자연스럽게 수영을 배웠다.

 

중학교 1학년 때 수영선수라는 꿈을 키우기 시작한 그는 1968년 해남고에 자퇴 원서를 내고 서울 고모 집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조오련은 YMCA 수영장에 다니며 실력을 키웠고, 1969년 전국체전 서울 예선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그는 수영복이 없어 사각팬티를 입고 대회에 출전했음에도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체육 명문으로 불리던 서울 양정고등학교로 전학 갔고, 이듬해 12월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우승했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선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으나,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는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200m에선 은메달도 추가했다.

 

조오련은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80년 8월 11일 오전 0시5분, 조오련은 부산 다대포 반도조선방파제를 출발해 일본 대마도 소자키등대로 향했다.

 

조오련이 수영으로 대마도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3시간16분10초. 당초 그는 바다 상황을 고려해 18시간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조류 덕분에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근육 마비가 오는 등 위기를 겪었다. 대마도에 도착했을 때는 혀가 붓고 갈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한 손에 태극기를 든 채 "대한민국 만세"를 부른 뒤 "대한남아의 용기와 기상을 발휘할 수 있어 기쁘다.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부모님과 국민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1982년에는 영국 도버해협을 9시간 35분 만에 횡단했다. 2000년에는 대한해협을 재횡단했고, 2003년에는 강원도 화천 비무장지대에서 여의도까지 한강 600리를 완주했다.

 

조오련은 대한해협 횡단 30주년과 광복 65주년을 기념해 2010년 대한해협을 횡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05년에는 두 아들과 함께 93㎞에 달하는 울릉도~독도를 18시간 만에 횡단해 독도는 우리땅임을 입증했다. 2008년에는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을 기려 독도 33바퀴를 회영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한국의 힘을 보여주고 나의 수영 인생을 마무리하겠다"고 했으나, 2009년 8월 4일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마지막 도전을 마무리 짓지 못하게 됐다.

 

고향 해남에 안장됐던 조오련은 2021년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이장됐다. 조오련은 손기정(마라톤), 민관식(대한체육회장), 서윤복(마라톤), 김성집(역도), 김일(프로레슬링) 등에 이어 스포츠인으로서는 여섯번째로 국립묘지 안장자가 됐다.

 

* 출처 : 머니투데이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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