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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별세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를 추모하다
관리자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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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마지막 황제>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1941~2018) 별세

 

2018년 11월 26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 그의 부고 기사에 거짓을 고하지는 않기로 했다. 영화사의 거장 앞에서 나는 종종 얼마간의 간극을 느꼈다. 거리의 간극, 시대의 간극은 메워지지 않았다. 대신 그는 늘 내게 살아 있는 역사였다. 개봉 즈음에 본 <몽상가들>(2003)도 있었고 비교적 최근에 본 <미 앤 유>(2012)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 대부분을 개봉 시기가 한참 지난 시점에 비로소 공부하는 마음으로, 지나간 역사의 찬란한 유적을 되짚는 심정으로 보았음을 감히 숨길 수는 없다. 그러므로 베르톨루치는 내게 먼 곳에서 장엄하고도 견고하게 버티고 선 아름다운 이국의 성(城)이었다. 이런 느낌을 받은 이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베르톨루치가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영화가 만들어낸 환상 때문일 것이다. 그와 나 사이에서 영화가 만들어낸 환상. 영화가 혁명과 섹스와 젊음을 소리 높여서 말할 때 나는 문득 베르톨루치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착각을 한다. 그것은 아마도 시대적 고민을 안고 영화를 관통하려는 그의 뜨거운 시도가 세대를 건너서 우리에게 닿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영화적 순간들을 다시 짚어볼까 한다.

 

 

성장의 표지로서 작동한 성과 정치


베르톨루치를 이야기할 때에는 자주 성과 정치가 언급된다. 68혁명의 실패와 허무주의적 섹스를 담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3), 그리고 유희적 섹슈얼리티와 혁명의 열기를 담은 <몽상가들>이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영화에서도 성과 정치는 상호 호환되며 자주 작품 위로 출몰한다. 그의 데뷔작인 <냉혹한 학살자>(1962)에서 취조실에 앉아 있는 도둑 보스텔리(알프레도 레기)를 카메라가 아래에서 위로, 앞에서 뒤로 비추는 장면에는 예상치 못한 섹슈얼리티가 너울거린다. 혹은 <거미의 계략>(1970)과 <순응자>(1970)가 선사하는 이미지들을 생각해보자. 짙은 콘트라스트와 엄격한 패턴(예를 들면 반복되는 창과 가로수들)의 이미지 위로 모종의 관능미가 시종 넘실댄다. 베르톨루치 영화의 섹슈얼리티는 단순히 성을 소재로 삼는 것의 의미를 상회한다. 그것은 파격적인 노출과 정사 신을 넘어서, 영화 전체에 드리운 관능적 기운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정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많은 평자들이 언급했듯이 <몽상가들>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정사 장면은 정치적이다. 그것은 인물들을 둘러싼 세계를 거칠게 배격하거나(<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혁명으로 연결된다는(<몽상가들>) 점에서 정치적 결단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혁명을 소재로 삼지 않을 때에도 베르톨루치의 영화는 정치적이다. 그리고 베르톨루치에게 성과 정치는 종종 같은 에너지의 다른 발현으로 보인다. 같은 뿌리에서 뻗어나온 두 갈래의 가지라고 해야 할까. 섹스는 정치로 이어지고, 정치는 다시 섹스로 굴절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의 경우, 성과 정치는 종종 성장의 표지로서 작동한다. <순응자>에서 마르첼로(장 루이 트랭티냥)는 스승의 암살을 기도하는 동시에 스승의 아내에게 이끌린다. 그의 아내 줄리아(스테파니아 산드렐리)가 60대 노인과 관계를 가졌다고 고백할 때, 마르첼로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내를 애무한다. 그의 정치적 결단과 섹스 모두 윗세대를 제거하고 어른 남성의 자리에 앉기 위한 길목에 위치한다. <마지막 황제>(1987)의 가장 에로틱한 장면, 성장한 푸이와 황후 완용이 서로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시점은 그가 황제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하는 시점과 일치한다. 혹은 정치와 성은 서로의 자리를 탐하며 꼬리를 물기도 한다. <몽상가들>에서 세 주인공의 행동은 시위에서 섹스로, 다시 시위로 행동을 옮겨간다. <마지막 탱고>의 경우 폴(말론 브랜도)이 외부적 실패를 피하여 섹스로의 도피를 시도한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폴의 실패는 68혁명의 실패를 상기시킨다. 그러니까 베르톨루치의 영화에서 성과 정치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 뜨거운 기운은 모습을 바꿔가며 인물들을 추동시키고, 베르톨루치의 영화적 세계를 지탱하여왔다.

 

 

혁명의 실패를 치유하고자 하는 시도들


그렇다면 새삼 질문하게 된다. 그 뜨거운 활동은 무엇을 향하여 지속된 것이냐고. 베르톨루치의 영화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화두를 꼽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68혁명일 것이다. 그의 영화들은 줄곧 68혁명의 자장 안에 있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1968년 이전의 영화들, 가령 <냉혹한 학살자>나 <혁명전야>(1964)는 마르크시즘과 신좌파에 대한 이념적 고민을 담고 있다. 68혁명이 마침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베르톨루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진통을 겪는다. 그는 <순응자>와 <거미의 계략>에서 아버지 세대, 그리고 정치적 배신에 대하여 고심한다. 그로부터 3년 뒤, <마지막 탱고>가 개봉한다. 혁명 후 세대를 대변하는 폴은 고독하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등장하여, 어떠한 교감도 거부한 채 자해하듯 섹스하다 죽임을 당한다. 이 작품은 후에 강간 장면에서 동의하지 않은 소품을 사용한 것과 관련하여 미투와 성폭력 논란을 낳기도 하였다. 1976년에 개봉된 <1900년>은 베르톨루치가 그때까지 탐구한 것을 집대성한 느낌의 작품이다. 그는 소장농과 지주 아들들의 일대기를 보여주며 계급과 혁명에 대한 장대한 서사시를 완성한다. 그 후 베르톨루치는 새로운 깨달음을 찾아 아시아로 온다. 그는 동양에 매혹된 듯 오리엔탈 3부작(<마지막 황제>, <마지막 사랑>(1990). <리틀 부다>(1995))을 연이어 완성한다. 그러나 혁명적 이상향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일까. 영화의 성공과 함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그로부터 한참의 공백이 있었다. 아시아의 스펙터클을 응시하던 베르톨루치는 돌연 이탈리아 시골에 있는 소녀의 이야기로 되돌아온다(<스틸링 뷰티>(1996)). 그리고 2003년에 <몽상가들>에서 다시 한번 68혁명을 이야기한다. 성장이 유예된 쌍둥이와 미국인의 입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 <미 앤 유>는 소품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영화 속 이복남매는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나와서 미래를 약속하고, 각자 씩씩하게 자기 길을 간다. 생각해보면 베르톨루치의 영화에는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 자주 등장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아파트, <마지막 황제>의 자금성, <몽상가들>의 집, <미 앤 유>의 아지트는 모두 외부로부터 차단되고 유폐된 공간이다. 이 공간은 베르톨루치가 혁명의 실패를 치유하고자 그의 영화에 마련해둔 공간이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미 앤 유>의 마무리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의 작품에서 이만큼 건강한 마지막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장의 마지막에 어울리는 또 하나의 도약.

 

생각하자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내게 하나의 시대였다. 혁명의 실패에 오래도록 좌절하고, 성과 정치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던 시대. 가져보지 못한 시절이건만 가깝게 느끼는 것은 베르톨루치의 영화가 우리에게 그 시절을 열어젖혔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황제>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나는 아이처럼 그의 유산을 조심스레 받아들었고, 그의 모습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또 하나의 시대가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 출처 : 씨네21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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